2022-03-17
[재테크_연금] 2055년 국민연금 적립금 모두 소멸…주요 선진국 연금 개혁 사례 주목해야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 후보 TV토론을 봤을 것이다. 한 후보가 제안을 한다. 국민연금 개혁에 모두 동의하시면 토론 장소에서 바로 합의를 하자고. 다른 후보들도 일제히 동의한다. 물론 구체적인 개혁 방안은 별개 문제지만 말이다. 다른 이슈들과 달리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쉽게 합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예산정책처의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자는 2030년 877만 명에서 2040년 1311만 명, 2050년과 2060년 각각 1627만 명, 1716만 명으로 증가한다. 가입자는 2030년 2087만 명, 2040년 1825만 명, 2050년 1538만 명에 이어 2060년에는 1254만 명으로 줄어든다. 연금을 수령하는 수급자는 계속 증가하는 데 반해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로 적립금 ‘고갈’이다.
2021년 5월2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맨 왼쪽) 주재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시작하기 전 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국민연금 개혁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재정적자 예상시점은 2038년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수급자에게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 재원(적립금)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고, 결국 모두 사라지게 된다. 아무런 개혁 없이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2055년이면 국민연금 적립금이 모두 소멸된다.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재정적자 예상시점은 2038년이다. 적자가 시작되고 나면 그 후 17년 만에 적립금이 고갈되는 것이다.
2020년 첫 직장을 가진 30세가 2054년까지 근무하면서 매년 자신의 급여 중 9%(회사 부담 포함)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납부해도 65세가 되는 2055년에 받을 수 있는 연금 재원이 없다. 물론 적립금이 없다고 해서 수령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재정운용은 ‘부분적립방식’을 채택했다. 과거 자신이 낸 보험료와 일하는 세대가 현재 납부하는 보험료를 통해 자신의 연금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반면 자신이 낸 보험료를 적립·운용해 자신의 연금으로 수령하는 방식을 ‘완전적립방식’이라고 한다. 현재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제도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적립방식과는 반대로 현재의 보험료 수입으로 지급할 연금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을 ‘부과방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보험금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초과할 경우 부족분을 정부 지원금이나 보험료 인상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민연금 적립금의 고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만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연금 재정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고, 건강보험처럼 지속적으로 보험료를 높이거나 정부 지원금이 없으면 약속한 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적립금의 운용수익률을 극대화하거나 연금의 지급시기를 늦추는 방법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불가능하거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결국 수급자의 연금을 낮추거나 가입자의 보험료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세대 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다.
국민연금은 올해로 35세다. 1988년 도입됐다.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이 가입 대상이었던 것이 1992년 5인 이상 사업장으로, 1995년에는 농어촌거주자(지역가입)로, 1999년 도시 자영업자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 2006년에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포함됐고, 이후 전업주부나 27세 미만 학생까지 임의가입을 받기 시작했다.
가입자가 증가할 때마다 그에 따른 재정수지 개선방안이 수반됐어야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998년 1차 제도 개혁에서 소득대체율을 기존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개시 연령은 기존 60세에서 2013년 61세를 시작으로 2033년 65세까지 늦추는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것이다. 2007년 2차 연금 개혁 때 소득대체율을 60%에서 장기적으로 40%까지 낮추기로 했다. 2008년 50%로 하향하고 매년 0.5%씩 낮춰 2028년 40%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덜 받는’ 안이다. 이를 통해 기금 고갈시점을 기존 2047년에서 2060년으로 연장했다.
그렇다면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어떨까. 제도 도입시점인 1988년 보험료는 3%였다. 이후 1993년 6%, 1998년 9%로 상향 조정된 후 24년 동안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보험료율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독일은 18.7%, 미국은 12.4%다. 일본은 2003년 13.6%에서 2017년 18.3%로 인상했다. 보험료 부담은 매우 직접적이다. 덜 받거나 늦게 받는 것보다 당장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가입자에게 민감한 변수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 개혁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세계 1위 저출산,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무 변화가 없다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55년 고갈되고,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진다. 약속한 연금급여를 맞추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든 정부 지원금이든 결국 일하는 경제활동 세대의 부담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주요 선진국들의 연금 개혁 사례들을 살펴보자. 일본은 2004년부터 후생연금의 보험료를 매년 0.345%p씩 단계적으로 올려 2017년 18.3%까지 인상했다. 영국과 독일은 지급시기를 늦추는 방법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수령개시 연령을 67세까지 연장했다. 캐나다는 1998년 기존 보험료율을 6.4%에서 9.9%로 인상했다. 2016년 보험료율을 11.9%로 또다시 인상하면서 소득대체율 25%를 2023년까지 33.3% 수준으로 높이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보험료 인상, 소득대체율 인하, 지급시기 연장 등의 방식으로 개혁이 이루어지는데, 캐나다는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을 이뤄냈다. 참고로 캐나다는 공적연금의 재정 안정화를 위해 3년 주기로 재정계산을 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선택의 문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소득대체율을 낮추거나 수령시점을 늦추는 조치를 실시해 왔다. 보험료 인상은 다른 대안에 비해 반대가 컸을 것이다. 국민연금법 제3조의2에 따르면 국가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동법 제4조에 따르면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돼야 하며, 5년마다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5년이 지나지 아니하더라도 새로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연금 개혁에 정답은 없다. 일하는 세대와 은퇴 세대 간, 소득계층과 지역 간, 현재와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의한 선택의 문제다. 가장 좋은 개혁은 빨리 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은 계속 미루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연금제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와 같은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는 개혁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하는 세대를 늘려야 한다. 해외에서 수입이라도 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