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4
임금상승률과 근속 안정성에 따라 가입 연금도 달라져야
정부는 매년 퇴직연금 가입자가 증가한다는 고무적인 통계자료를 내놓고 있다. 퇴직연금제도는 2005년 말 시행됐는데, 2020년 말 기준으로 총 도입 대상 사업장 146만4000곳 중 약 39만9000곳이 도입하면서 사업장 기준 도입률은 27.2%를 기록했다. 5년 전인 2015년 26.2% 대비 1.0%포인트 상승했다. 정부 말처럼 눈에 띄는 성과가 있다고 보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제도유형별 적립액을 보면 확정급여형(DB)이 확정기여형(DC)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도입 초기 퇴직연금 가입을 주도했던 대기업에서 대부분 DB형을 선택한 결과다. 장기근속과 높은 급여 수준으로 인해, DC형에서 많은 투자수익이 발생하더라도 DB형이 더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가입 사업자는 매년 증가하지만 수익률은 가입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만큼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연합뉴스
퇴직연금 가입자의 현명한 선택
DB형은 근로자가 퇴직하는 시점에 지급금액이 정해지고 사용자가 지급 책임을 지기 때문에 매우 보수적으로 운용돼 왔다. 이런 이유로 DB형은 대부분 90% 이상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임금상승률 정도의 운용수익을 거두면 되고, 부족할 경우 사내 다른 자금으로 충당하면 된다.
DC형은 다르다. 납입은 사용자가 하지만 운용 주체가 근로자이고, 스스로 운용한 결과물이 바로 자신의 퇴직급여가 되는 것이다(IRP특례 포함). 그럼에도 운용방법에서는 DB형과 별반 차이가 없다. DC형에서도 원리금 보장상품은 79%에 육박한다(2020년 말 기준).
운용방법에 차이가 없음에도 매년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사업장의 제도유형별 비중을 보면 DC형을 도입하는 사업장이 많으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아마도 신규 도입 사업장의 경우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장기근속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속 안정성이 떨어지거나 잦은 폐업으로 인해 퇴직급여를 받지 못할 우려가 큰 중소기업 종사자나 직장을 자주 옮기는 근로자는 DC형을 선호할 수 있다.
그렇다면, DC형의 운용방법을 달리했을 경우 DB형에 비해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검토해 보자. 대기업 근로자의 경우 통상적으로 임금상승률이 높고 장기근속 가능성이 크다면 DB형이 좋다고 평가된다. 과연 그럴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3.43%다. 퇴직연금제도 선택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변수가 바로 이 임금상승률이다.
일례로 미국 증시의 장기 데이터 분석 결과, 투자기간 13년 이상 장기투자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연평균 6%였다. 전략적 자산배분을 통해 근로자 스스로 연간 6%의 수익률 달성이 가능하다면 임금상승률 3.43%를 적용한 DB형의 경우 근속기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DC형에 비해 높은 퇴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 DC형과 동일한 퇴직급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10년, 20년, 30년 근속의 경우 임금상승률은 각각 8.71%, 6.83%, 6.43%에 달해야 한다.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수치이므로, DC형으로 장기투자하는 게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실제 DC형의 운용수익률은 DB형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최근 5년간 DC형의 운용성과를 살펴보면 연평균 2.15%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DB형과 마찬가지로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5년간 DC형 중 실적배당형 상품의 연평균 운용수익률은 4.46%다. 5년 정도 짧은 기간의 데이터라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장기투자 원칙에 충실하게 운용된다면 기간이 늘어날수록 6%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근로자 스스로 DC형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설정돼 있는 퇴직연금제도 유형을 가입자가 단독으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률에 따라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가 있으면 이미 설정돼 있던 유형을 변경할 수는 있다. 혼합형의 경우 DB형 가입자도 적절한 시점에 DC형으로 변경할 수 있다. 내부 규약 등 제약요건이 있을 수 있으나 DB형을 DC형으로 전환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능하다. DB형은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퇴직급여를 결정한다. 만약 DC형으로 전환한다면 전환 시점에 동일한 방법으로 퇴직급여를 산출한다. 승진을 하거나 최근 임금이 높게 상승한 경우 그리고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사업장에 근무한다면, DC형으로 전환하기에 좋은 때다.
DC형을 선택했다면 근로자는 장기투자 관점에서 스스로 자신의 퇴직급여를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최근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TDF(Target Date Fund)를 경쟁적으로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다.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 비중을 감소시키는 매우 합리적인 장기투자 전략을 추구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큰 고민 없이 퇴직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대안이다.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이 갈아타기 적기
물론 TDF를 선택할 때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상품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지만 장기투자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시장을 추종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종목이나 섹터보다는 시장지수와 동일한 수익구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낮은 비용의 TDF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지수 추종형은 기본적으로 운용전략의 차이에 따른 수익률 차이가 크지 않다. 이럴 때 장기투자 수익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해당 펀드의 총비용이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해 보자. 첫째, 사업장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높은 임금상승률이 예상되지 않는다면, 가급적 많은 퇴직급여를 받기 위해 DB형보다 DC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둘째, DC형을 선택한 경우 그 특성에 맞게 장기투자 원칙에 따라 원리금 보장형보다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적절히 배합한 전략적 자산배분 중심의 운용이 필요하다. 셋째, 이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제시하는 TDF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다만, 가급적이면 비용이 낮은 것을 골라야 한다. 현명한 선택으로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퇴직급여를 받아보자.